(In Korean) Whiplash – Opinion Writing

위대한 업적보다는 작은 일상의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좋은 삶’이다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삶의 당연하고도 결정적인 구성요소다. 철학자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좋은 삶에 있어서 정신적 자유와 육체적 고통의 부재는 필연적이다. 그는 정신적, 육체적 쾌락의 가치를 강조하며 행복과 만족감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 준다. 나는 작은 것들 하나하나에서도 행복과 만족을 얻고 감사하며 큰 염려 없이 살아가는 것을 좋은 삶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내가 정의한 ‘좋은 삶’과 다소 다른 길을 향한다. 명예와 권력, 인정 그리고 공적, 유명세와 물질적 행복과 성공을 추구한다. 한국인들이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물질적 행복이라는 통계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세계 17개국 중 오직 한국만이 물질적 행복(19%)을 1순위로 꼽았다. 그렇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도, 길이길이 남을 명성을 얻은 삶도 언제나 좋은 삶이라 일컫을 순 없다. 나는 위대한 업적보다는 작은 일상의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아는가? 공자의 논어에서 온 널리 쓰이는 말인지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플레쳐는 앤드류를 지나치게 채찍질하며 폭력과 폭언을 서슴치않는다. 자신의 제자들을 한계까지 도달하게 해 비로소 그들을 어떠한 경지까지 성장하게 하려는 플레쳐의 큰 그림이다. 그렇게 그가 광기로 이뤄낸 성공은 어떻게 보면 놀랍고 위대하지만 결국 앤드류에게서 많은 것들을 앗아가고야만다. 가족, 연인, 여유,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잃는다. 앤드류에게 성공의 척도는 피를 흘려가며 얻어야하는 드러머 자리와 제2의 찰리파커라 불릴만한 명예와 명성이었다. 사실 현대인의 삶들 중 여럿은 앤드류가 선택한 삶과 어느정도 닮아있다. 그들과 앤드류는 인정에 목말라 끝없이 노력한다. 사회적 관계보다는 자신의 성공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위플래쉬의 감독은 앤드류가 빈 껍데기 같은 비참한 인간이 되갈 것이라 말한다. 이처럼 채찍찔하며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은 결국 소중한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방법일 뿐이다. 많은 이에게 성공의 척도가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되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권력과 명예는 가질수록 목이 마르기에 항상 어느정도의 허기를 가지고 살아가야하며 행복의 열쇠는 ‘만족’이라고 말한다. 욕심은 눈덩이 같아서 무언가 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무거워진 눈덩이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굴러떨어지듯이 지나친 욕심은 한순간에 괴로움과 좌절을 초래한다. 커다란 목표와 존경받을 만한 성과를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는 말은 미디어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배가 아프도록 먹으면 체하듯이, 밤을 새워 공부하면 다음날 시험을 망치듯이 뭐든 과하면 모자람과 같다. 위대한 업적을 향한 지나친 노력은 이미 곁에 있는 소중한 일상을 잃게 만든다. 업적을 세우기 위해 사는 삶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과한 욕심과 소유욕은 행복을 팔아서라도 명예를 가져다 주지만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내일과 그 이후의 하루하루의 일상적이지만 소중한 행복까지 보장해준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성공의 법칙은 내가 정의한 ‘좋은 삶’을 살아가는 가이드라인과 같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일컫는 성공이란 물질적 또는 권위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성공법칙으로 성공했다. 상대성이론, 광전효과 법칙의 발견 등의 업적을 역사에 남긴 그의 성공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법칙대로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면 그 법칙은 신뢰할 수 있다. 그말인즉슨 우리도 성공법칙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성공공식은 이러하다. “A가 인생의 성공이라면 A=x+y+z다. x는 일, y는 놀이, z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할 때에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놀고 인생을 즐기며 신중히 생각하여 말보다 행동이 먼저 오게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어록도 남겼다. “지구에 불행한 아이가 있는 한, 위대한 발견과 발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기를 뛰어넘어 길이길이 이름을 남긴,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그조차도 개인의 행복을 위대한 발전과 발견 앞에 두어 중시한다. 아인슈타인과 에피쿠로스가 주장한 인생을 즐기는 것의 중요성은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성경에도 기록되어있다. 성경 속 책 들 중 전도서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이다 (3: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이 구절은 ‘사람의 몫, 임무 또는 의무 중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즐거움으로 임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말하며 즐거움이 주는 만족감과 그것의 긍정성을 주장한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아 곁에 있던 것마저 앗아갈 수 있으며 삶에 즐거움으로 임하는 것이 바로 좋은 삶을 살아가는 지름길이다. 일과 놀이 그리고 신중함이 더해져 성공한 삶을 이루며 개인의 행복의 가치는 항상 위대한 발전과 발견의 가치를 앞지른다. 이렇게 우리는 내게 이미 주어진 것들, 그리고 나의 행복감을 챙기는 선에서 달성해낸 성과에 기뻐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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